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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9.03 08:51

[김윤석의 드라마톡] 판타스틱 첫회 "문득 멈춰서서 돌아본 삶의 한 가운데, 무겁지만 가볍게"

미미한 출발과 흥미로운 전개, 다만 아직은 시작

▲ 판타스틱 포스터 ⓒJT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판타스틱. 뭐랄까... 시작은 진부하고 지루했다. 어수선한데다 참신함이란 전혀 없었다. 주인공 이소혜(김현주 분)가 암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을 때도 또다시 시한부인생이구나. 하지만 암에 걸린 것을 안 이소혜가 무리해서 옛친구들을 찾고 다시 만났을 때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평생 앞만 보며 달리다 무심코 멈춰서서 돌아본 주위의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째서 하필 드라마였을까? 남주인공 류해성(주상욱 분)이 배우면서 발연기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주인공 이소혜가 드라마작가인 것까지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원래 사람이 자기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라고 하는 배역을 연기한다는 것과 같다. 혹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다. 혹은 누군가의 형제이고 자매다. 부모로서 얼마나 자식들에게 자신의 할 도리를 다 해 왔는가. 사장이라면 얼마나 주주와 임직원들에 대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어김없이 지켜왔는가. 사람에 대한 평가는 결국 배역에 대한 평가다. 부모로서, 혹은 사장으로서 자신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가.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았는가.

하지만 과연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조금의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란 몇이나 되겠는가. 모두가 부족하고 아쉬운 가운데 억지로 타협하며 현실을 견디고 살아간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자기를 연기하며 어떻게든 자신을 속이고 현실을 속이려 한다. 

그만큼 자기는 열심히 살았다. 문제없이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여기며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킨다. 그런데 때로 그 결과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자신은 물론 주위까지 모두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은 물론 주위의 모두가 자기가 발연기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아예 발연기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대본을 고치려 한다. 과연 류해성은 그동안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더 나은 연기를 해보려 모든 것을 걸었던 순간이 있었는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써나간다. 자신의 배역을 자신이 결정한다. 물론 쉽지 않다. 드라마를 만들 때도 작가라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작사의 입장도 있고, 실제 제작에 참여할 스태프의 이해도 있으며, 출연할 배우들과의 소통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더 자신에게는 부모가 있었고, 형제가 있었고, 학교에 다니면서는 친구들이 있었으며, 지금의 일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맺게 된 관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런 가운데 자신의 드라마를 써나간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렇게 믿는다. 더 정확히 앞으로 그렇게 되려 한다. 죽음이란 끝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그야 말로 끝이다. 

한바탕 그동안 서운했던 것들을 모두 쏟아낸 뒤 다시 찾아가 만난 언니에게 이소혜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엄마아빠가 사고나던 날 엄마가 만들어놓았던 잡채의 맛이 궁금했는데 이제는 더이상 궁금하지 않다. 장례치르고 하느라 분주한 사이 결국 쉬어서 버려야 했던 잡채의 맛음 아마도 엄마의 손맛을 그대로 빼닮은 언니의 맛 이것이었을 것이다. 

진짜 그런가는 상관없다. 이미 돌아간 부모와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엄마가 만든 잡채맛이 궁금했던 것은 더이상 엄마가 자기에게 잡채를 만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더이상 잡채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게 되었을 때 엄마와 닮은 언니의 잡채만이 남게 된다. 남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 만든 것은 설사 버리지 않고 먹었더라도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 자신의 삶도 어쩌면 엄마가 남긴 잡채와 같지 않을까. 

경찰까지 동원해서 그동안 보고 싶지만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도 다시 만나게 된다. 어쩌면 전형적인 패턴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 하고 미련없이 마지막 순간을 맞으려 한다. 여전히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이소혜에게는 목돈이 필요하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드라마를 완성해 보려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상당히 절박하지만 분위기는 가볍다.

그런데 하필 그 현장에서 만난 것이 자기 배역도 제대로 연기 못하는 류해성이다. 매번 핑계를 대고 이유를 찾으며 자신의 발연기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이소혜는 그래도 지금까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왔다 자부하고 있다. 류해성은 이미 한 번 이소혜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적이 있었다. 최소한 이소혜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당뇨로 시력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위해 드라마에 출연해야 하는 류해성의 간절함이 한가닥 여지를 남긴다.

결국은 이후의 구성과 연출에서 성패가 갈리지 않을까. 아니 예상이랄 것도 없다. 당연한 사실이다. 발연기를 연기해야 하는 주상욱의 발연기와 같다. 오히려 못하는 척 연기하는 쪽이 더 어렵다. 어수선하고 들뜬 가운데 만듦새마저 어색하다. 욕심이 지나쳤다. 하지만 앞으로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들이다. 지나고 나면 드라마의 평가는 갈리게 될 것이다. 과연 지금 필자가 느끼고 있는 이것이 원래 드라마가 의도한 것인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이지만 문득 멈춰서서 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랜 친구가 있고, 혹은 오랜 악연이 있다. 당연하게 그 자리에 있는 가족들도 있다. 자기가 선 곳을 확인한다. 자기가 걷고 있는 이 길을 가늠해 본다. 내가 이제부터 갈 수 있는 곳은 바로 저기까지다.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된다. 짐을 풀어 살핀다. 한 번 쯤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직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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