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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4.15 08:18

로열 패밀리 "공순호와 김인숙, 거울속의 괴물들"

너무나 닮은 두 사람, 닮아서 증오할 수밖에 없는.

 
“돈이 아니라 목숨을 줘도 절대 잃으면 안 되는 걸 잃었어요. 어머니가 보여준 무지개 때문에 사무치게 소중한 걸... 그걸 돌려받을 수 있다면 난 내 목숨도 버릴 거에요. 근데 어머니도 나도 그럴 수 없는 거에요. 그게 바로 우리 두 사람이 가진 공통점이자 비극인 거에요. 실패했어요. 어머니도 나도 실패한 인생이에요.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마찬가지에요. 공순호 회장님께서도 어머니로써, 아내로써, 인간으로써 실패했어요. 어차피 똑같이 실패한 인생 누가 더 나락으로 떨어질지, 누가 누구를 벼랑끝에서 밀어낼 지 그 끝을 봐야 하지 않겠어요?... 네, 꼭 그래주세요. 제가 벼랑 끝에 설 일이 있으면 그땐 꼭 벼랑 아래로 밀어주셔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공교롭다. 김인숙(염정아 분)은 공순호(김영애 분)에 의해 아들 조병준(동호 분)을 빼앗겼다. 그리고 공순호의 입장에서 김인숙은 자신의 아들 조동호를 자신으로부터 빼앗아간 여자다. 김인숙은 아들 조니 헤이워드를 잃었고, 김인숙도 아들 조동호를 잃었다. 남편 조경탁이 죽고 공순호는 JK의 이사들과 싸워야 했었고, 김인숙은 JK의 총수 공순호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동안 주목해 온 대로 두 사람은 무척 닮았다. 조니와 조동호의 죽음에 대해 하나같이 어머니로써 자기 탓이라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공순호가 아들 조동호로부터 속임수까지 동원해가며 JK메디컬의 지분을 빼앗은 것도 조동호가 자기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도록 - 즉 김인숙에게로 완전히 가버리는 것을 막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리고 김인숙은 50억을 주겠다는 제안마저 거절한 채 아들 조병준을 지키려 한다. JK그룹의 지주사 JK메디컬을 사이에 둔 싸움도 김인숙은 결국 아들 조병준의 이름으로 하려 하고 있다. 과연 K인 김인숙과 JK의 총수인 공순호와 JK패밀리 안에서 진정으로 그들이 신뢰하고 애정하는 관계란 누가 있을까? 김인숙에게는 변호사 한지훈(지성 분)이 있고, 공순호에게는 오랜 친구인 변호사 김태혁(독고영재 분)이 있다. 사실상 딸 조현진(차예련 분)조차 온전히 공순호에게 가족으로서의 정을 느끼지 못한다.

영광의 정점에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 했던 김인숙처럼, 그리고 바로 그 부와 권력의 정점인 JK의 총수로서 공순호는 아들을 잃었다. 그거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욕망이 시킨 탓이었다. JK를 지키고자 하는. JK의 총수로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무엇보다 아들을 자신에게 묶어두고자 하는. 그리고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영영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도록 만들었다. 김인숙과 마주한 자리에서 공순호가 우는 것처럼 보인 것은 역시 김인숙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김인숙이 바로 공순호 자신이다. 그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가 안 좋다. 어머니와 딸의 사이가 안 좋다. 자기 모습을 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는 또 딸에게서. 딸은 다시 어머니에게서. 근친증오다. 너무 닮아서. 너무 닮아 있어서. 자기의 혐오스런 부분까지도. 그것은 자기에 대한 혐오이고 증오일 테지만, 그것은 타인에 대한 것으로 바뀐다. 그렇게 납득하고 마는 것이다.

“네가 나쁜 거야!”

그래서 공순호에게 김인숙은 인간이어서는 안 되었다.

“이 무모한 싸움의 목적이 뭔지는 알 수 있을까?”

“존엄! 그걸 돌려주세요. 어머니가 잃어버리신 인간의 존엄, 그것 말이에요.”

“후훗! 그거라면 쉽지는 않겠구나.”

자기를 용서하기 위해서라도 김인숙을 증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김인숙이 어쩌면 지금 공순호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자기에 대한 혐오일 것이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처럼, 그 흉측하고 끔찍한 괴물의 모습이. 그것은 자신의 모습이었고 결코 돌아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김인숙을 비웃고 나서는 공순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아버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괴물이 된다. 김인숙도 마찬가지로 괴물이 된다. JK라고 하는 자신의 성을 지키기 위해. 이제까지 해 온 자기 자신의 정당성,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JK란, JK패밀리란 이제 그녀 자신의 성이며 그녀 자신이기도 하다. 그것을 지킬 때 공순호는, 공순호의 주위는 의미가 있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그리고 괴물이 되어 버린 공순호는 김인숙과 마찬가지로 JK 안에서 외톨이다. 김인숙의 말처럼 그녀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며느리 임윤서(전미선 분)이 그녀를 배반하고 김인숙의 편에서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그에 대한 응보다. 막내아들과 며느리는 그녀가 미국으로 보내버렸고, 아니 조현진에 대해서는 어머니로서 딸이 자기를 닮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까? 조현진에게는 어머니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을 테고?

정가원이라는 성 안에 갇혀 사는 괴물들.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일어가는 모습들. 가끔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고는 깜짝 놀라 어느새 누군가를 탓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누군가를 증오한다. 더 많이 가지려. 가진 것을 지키려. 인간이 스스로 관계를 단절하려 하면 인간이 아니게 된다. 인간이란 소통하는 동물이다. 소통이란 양보에서 나온다. 양보와 타협이 없는 소통은 일방적인 감정의 배설일 뿐. 그렇게 인간은 괴물이 된다.

싸움이 참 저열하다. 김인숙은 임윤서와 더불어 공순호의 뒤를 칠 준비를 하고, 공순호는 선전포고를 해 온 김인숙에 대해 한지훈과의 키스장면을 편집해 김인숙과 한지훈의 불륜을 꾸며 퍼뜨리려 한다. 김인숙이 터뜨리려는 근거들에 대해 김인숙의 인격 자체를 공격함으로써 그 신뢰를 떨어뜨리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 엄기도(전노민 분)는 조직원들을 동원해 안가를 습격하고, 한지훈은 다시 그것을 협박하고.

진실이 없는 진심이란 공허하다. 진심이 없는 진실이란 무의미하다. 무엇이 진실인가 알 수 없을 때 간절한 진심은 의심이 되고 확신이 되고 원망이 되고 증오가 된다. 무엇이 진심인가 알 수 없을 때 진실은 일그러지고 일그러지며 의심과 불안, 공포라는 괴물을 낳는다. 김인숙으로 하여금 차라리 벼랑의 끝에서 밀어달라 말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그 괴물이며, 한지훈으로 하여금 애써 김인숙을 외면하도록 만드는 것도 바로 의심이라는 괴물 때문이다. 그러나 알게 된다. 진심은 진심으로써 진실이 되며, 진실은 진실로써 진심이 된다는 것을.

“용서가 아니라 믿는 거야.”

“믿지도 않는 사람을 어떻게 지켜?”

사실일까? 사실인가의 여부는 상관없다. 그렇게 믿으면 되니까. 믿고 싶은대로 믿으면 된다. 배신당할 때 배신당하더라도. 믿고 있다는 진심 만큼은 사실일 테니. 믿고 있고 믿고 싶다는 진심 만큼은 진실일 테니. 단지 진실을 이유로 도망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김인숙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감당할 수 없이 큰 진실 앞에 그녀는 진심을 묻어버린다. 차라리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고 물어뜯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차라리 상처를 쥐어뜯어 헤집어 버리고 싶다. 아프지나 않게.

그것을 한지훈은 엄기도로부터 듣는다. 어머니 서순례로부터 듣는다. 김인숙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김인숙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지켜본 그들의 진심으로부터. 김인숙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김인숙은 이미 한지훈을 끝까지 믿고 지켜준 것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진심 앞에 때로 진실이란 아무 의미가 없을 지 모른다. 한지훈은 오랜 방황을 끝내고 - 아니 그가 바라던 대로 다시 김인숙을 위한 싸움에 뛰어든다. 김인숙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어째서 스티븐 하사를 살해한 사건이 CID에 의해 극비로 분류되어 있는가? 김인숙은 어떻게 미국으로 갔고, 그리고 왜 다시 조니를 두고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는가? 그녀는 또 어떻게 JK에 입사할 수 있었는가? 김인숙이 아들 조병준을 어떤 위협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 이미 한 번 포기해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상황에 쫓겨 아들을 버려둔 채 다른 신분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떠나와야 했으니까. 버려야 했던 아들 조니와 빼앗겨야 했던 아들 조병준, 그리고 자신의 것이 아닌 아들 한지훈. 그녀가 다시 그 아들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위험한 싸움을 시작하려는 이유다.

솔직히 많이 오해했었다. 원작을 보았던 탓에. 욕망이 아니었다. 탐욕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말대로 뒤틀릴대로 뒤틀린 그녀의 삶이 그녀를 그리로 내몰았던 탓이었다. 고아인 탓에. 하필 자란 것이 이태원 기지촌이었던 탓에. 이태원 기지촌에서도 강미자라는 포주에게 거두어진 탓에. 그래서 강간의 위험에까지 내몰렸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친인이 죽는 것을 보아야 했으며, 스스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죄를 피해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도피하고 마침내 자식마저 버리고 돌아와야 했었다. 공순호에 대한 증오도. JK에 대한 증오도. 결국 그녀에게 가해진 가혹한 시련의 결과다. 증오는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자신이 만든 증오만이 아닌 다른 이의 증오에 의해서도. 단 한 번도 인간으로서 살아보지 못했다고 하는 절망. 그래서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으로서 살고 싶다고 하는 욕망. 그 순수한 욕망이 현실과 만나 일그러지며 괴물을 낳는다. 괴물에 먹혀버린다.

마치 <김인숙 여사의 불행한 인생>을 보는 느낌이랄까? 너무 슬퍼서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아마 한국 드라마 특유의 인간적인 연민이었을 것이다. 마냥 미워하지는 못하는.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그래서 한국 드라마에는 그야말로 드라마가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드라마다. 사랑하고 원망하고 고뇌하고 분노하는 드라마다. 인간이 만들어가는 서사다. 조금 더 나쁘게 그려졌어도 좋았으련만. 어느새 공순호에 대해서마저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작가의 힘일까? 한국 드라마가 세계에서 통하는 이유다. 따뜻하다. 그것이 가끔은 불편하게도 느껴지지만. 오죽하면 저 착하고 순진한 여자가 저런 악녀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겠는가?

조현진과 한지훈 사이의 로맨스는 결국 기믹이었던 모양이다. 최근 조현진의 분량도 그리 없는 편이다. 거의 역할이라고는 공순호의 말을 듣고 한지훈에게 말을 전달하는 정도? 스스로 어떤 사건도 일으키지 못하고 어떤 변수도 되지 못한다. JK 안에서 그나마 사람으로서의모습을 갖추어가던 모습에서 어느새 정체되어 퇴행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설마 그녀는 공순호가 되려는 것일까? 무모한 예상이다. 이 추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싸움이 그녀를 다시 변화시키지 않을까? 아니면 이대로 사라져 버리려는 것인가?

조니 헤이워드의 죽음에 대한 단서가 이번 회에서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아예 강충기(기태영 분) 검사쪽의 분량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엄기도의 확신에 찬 말 한 마디 외에는. 결국 다음주를 기대해야 하는 모양이다. 마침내 임윤서마저 공순호의 반대편에 섰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JK와의 싸움도 조니 헤이워드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지훈과 김인숙, 한지훈과 조현진의 관계도 정리되리라. 2회연장이니 4회 남았을까?

사실 조금 무리수라는 생각이 있었다. 특히 한지훈과 김인숙의 키스장면에 대해서. 그래도 JK쯤 되는데 싸움방법이 너무 치사한 것 아닌가? 그 짧은 동영상의 장면을 기억해서 그것으로 김인숙을 공격하려 하는 것도. 그리고 그런 건 아랫선을 통해 비밀스럽게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그것을 추진하던 안가를 엄기도가 습격하고, 조동진이 다시 막고, 한지훈이 딱 맞는 시간에 찾아와 해결하고. 너무 작위적이다. 하지만 일단 재미있으니까.

모든 것이 용서되는 마법의 키워드일 것이다. 재미있다. 드라마가 드라마인 이유인 것이다. 재미있는 드라마다. 그래서 좋은 드라마다. <로열 패밀리>는. 최고의 감동이었다. 벌써부터 숨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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