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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8.28 09:35

[김윤석의 드라마톡] 청춘시대 마지막회 "완결되지 않은, 아직 미숙한 청춘들의 계속되는 이야기"

각각의 개성과 매력을 가진 청춘들의 일상과 비일상에 빠져들다

▲ 청춘시대 포스터 ⓒ드림이앤엠, 드라마하우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청춘시대. 그러고보면 언제부터인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아예 없어졌다기보다는 단지 일부러 찾아볼 필요가 사라졌다고 보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미숙한 시절의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들이 있었다. 그런 드라마들과 함께 고민했고, 나름의 답을 찾았고, 그리고 성장해 왔다. 어쩌면 '청춘시대'도 그런 드라마였을까?

어느새 나이가 들었음을 깨닫는다. 그토록 되고 싶었고 되고 싶지 않았던 어른이 되어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참 하찮다. 정말 별 것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괜히 심각해진다. 쓸데없이 진지해져서는 혼자 고민하고 혼자서 앓는다. 지나고 나면 답이 보인다. 그때는 이렇게 했어야 했다. 그런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여기며 보고 있으니 어쩌면 이리도 그런 모습들조차 귀엽고 풋풋하기만 한가. 하지만 그때는 무엇이 답인지 알지 못했다. 좌충우돌 부딪히며 어떻게든 없는 답을 찾으려 발버둥쳐야만 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항상 옳은 판단만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항상 미숙하고 불완전하다. 항상 실수하고 의도하지 않은 잘못들을 저지른다. 지나고 보면 정답이 보이고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답이 보이고 만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지금도 이것이 자신에게는 최선일 터였다. 굳이 하지 말아야 할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일부러 하려는 사람도 없다. 저마다 심각한 이유가 있고 진지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분명 오래전 자신도 그렇게 별 것 없고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드라마에 이입하며 보고 있는 필자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였다.

과연 또래들에게 드라마가 어떤 느낌으로 비쳐지는가 세대가 다른 필자로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차피 알 필요도 없다. 드라마를 보는 것은 필자 자신이다.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것도 오로지 필자 자신의 감상이다.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그 무렵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리고 그때 정답이라 여기며 자신했던 무모하고 어리석던 행동들까지도. 하지만 당당했었다. 확신에 차 있었다. 후회하느냐면 그다지 후회는 되지 않는다. 달리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참 매력적인 아가씨들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지 않은데 평범하다. 각자 나름의 고민이 있다. 각자 자기만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 답을 고민한다. 결코 쉽지 않은 답을 찾으려 몸으로 부딪힌다. 가장 오래 자기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것은 의외로 가장 쉽게 살았던 것 같은 강이나(류화영 분)였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자기가 살아도 좋은가. 이대로 자기가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다만 누군가 대신 답을 내려주기까지 정면으로 문제와 마주할 자신이 없어 도망치고 있었다. 자신을 내던지며 학대하고 있었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으면 어쩐지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가장 고민이 적었을 것 같은 것은 맏언니인 윤은재(한예리 분)였다. 그녀의 문제는 자신이 아닌 외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식물인간이 된 동생과 동생만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였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다. 항상 쫓기며 지내야 했었다. 처음으로 멈춰서서 문득 주위를 돌아봤을 때 문제의 답은 너무나 명확해 보였다. 선택의 여지조차 없던 삶에서 이제 겨우 자신을 위해 고민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단지 모든 문제의 원인이던 동생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어머니의 진심을 들은 것만으로 모든 것은 가능해졌다.

유은재(박혜수 분)가 지금껏 혼자서 앓고만 있던 고민의 답은 드라마에서도 비밀로 남겨둔다. 과연 유은재가 바꿔친 보온병으로 인해 아버지는 사고를 당한 것인가. 유은재의 집에 끊이지 않던 사고들은 유은재가 믿고 있는 그대로 모두 아버지로 인한 것들이었는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단지 유은재의 오해와 착각에 지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어쩌면 유은재의 고민이야 말로 드라마의 주제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어차피 진실이 무엇인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면서 혼자서 고민하고 답을 내린다. 그래서 그 답이 정답인지 자기가 어떻게 아는가. 그런데도 끊임없이 고민만 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성장기에 누구나 가지는 고민이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거역하기 시작한다. 원래 부모와 자신은 하나였다. 자기가 자라면 당연히 부모처럼 되는 것이었다.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된다. 자기와 부모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은 아빠도 엄마도 아니었다. 사춘기의 시작이다. 자기 안에서 부모의 존재를 지워가는 과정이다. 부모로부터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 부채는 남게 된다. 자기가 지워버린 자기 안의 부모의 존재에 대한. 이를테면 원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자식은 부모 앞에 죄인이다. 이제는 오히려 보호자가 되어 엄마를 지키고 야단치는 유은재의 모순된 모습은 차라리 은유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가장 평범한 고민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정예은(한승연 분)이었다. 하긴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그렇다. 머리가 시킨다고 그대로 따른다면 그것을 감정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화내서는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내고, 웃어서는 안되는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웃게 된다. 더이상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제는 헤어지고 싶다 말하면서도 끝끝내 헤어지지 못한다. 지나고 보면 단지 추억에 불과하다. 가장 최악은 그 추억이 후회로 기억되는 것이다. 마지막 헤어지는 과정이 그야말로 스펙타클했다. 그 정도는 해야, 아니 그렇게까지 하고서도 미련이라는 것이 남는다. 그런데도 억지로 웃으며 견디는 것은 자신과 주위를 위한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녀는 항상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 그녀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외부와 이어주는 렌즈의 역할을 하던 것이 송지원(박은빈 분)이었다. 송지원의 고민이 드러나지 안는 것은 그녀가 학보사 기자였기 때문이었다. 가장 객관적으로 모두를 지켜보는 위치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무심한 거짓말이 정예은을 제외한 모두에게 멈췄던 시간이 다시 바쁘게 흐르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주고 있었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하나씩 귀신이 살고 있다. 송지원의 거짓말이 그 귀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정작 자신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시청자 자신같다. 남의 일을 지켜보며 정작 자신은 보지 못한다. 송지원과 나머지 그녀들의 거리가 시청자와 드라마의 거리다.

때로 웃고, 따로 안타까워하며, 때로 그리워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실제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럴 법한 고민들이다. 물론 지금도 끝은 아니다. 여전히 고민하다. 지금 이 길이 옳은가. 지금 자신은 괜찮은가. 고민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인 사람도 있다. 마음껏 고민하기 위해 윤진명은 아무도 없는 중국으로 떠난다. 자신의 길을 찾았지만 그곳에도 정답은 없다. 불안해하고 의심하면서도 강이나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최선을 다한다. 유은재는 자신의 고민을 잊었다. 자기 나름대로 합리화하며 지금에 충실하다. 진실은 갑자기 전혀 대비하지 않은 순간 사고처럼 자신의 앞에 나타난다. 애써 아무렇지 않다 변명하던 것이 눈앞에 나타난 현실에 비명으로 바뀌고 만다. 송지원은 오늘도 변함없는 일상을 이어간다. 그토록 간절히 고대하던 기회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것을 알지 못한다.

주인할머니의 기저귀와도 같다. 한껏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품위있게 기저귀를 찬다. 고민은 그와 같다. 당장의 괴로움도 갈등도 그와 같은 것이다. 오늘을 고민하며 오늘을 산다. 먼 미래가 아닌, 결정된 어느 순간이 아닌.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순간들이다. 의도가 충실히 전달된다. 의외로 산다는 것은 매우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다. 사람은 대수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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