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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8.03 06:28

[김윤석의 드라마톡] 닥터스 14회 "강하면서 약한 이름 아버지, 남바람 부자의 이유"

시작된 홍지홍의 싸움, 새로운 인연들이 자라나다

▲ 닥터스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닥터스. 사실 사과라는 것이 때를 놓치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사과를 하기도 어렵고, 설사 사과를 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온 시간들이 관성이 되어 아주 작은 변화조차 어색하게 만든다. 뒤늦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상대를 용서하는 것도 너무 어색해서 불편해진다. 차라리 지금처럼 미워하고 원망하는 편에 오히려 더 편하다.

어째서 남바람(남궁민 분)과 그의 두 아들이었던 것일까?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의사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홍지홍(김래원 분)과 유혜정(박신혜 분) 두 사람이다. 의사가 되기 전부터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이 두 사람을 위해 존재했었다. 병원도, 다른 의사들도, 무엇보다 매번 새롭게 서로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가지고 등장하는 환자들까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그 의도를 드러낸 탓에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남바람과 그의 아들들을 그들 앞에 환자와 가족으로 등장시킨 것일까?

어쩌면 유혜정의 아버지 유민호(정해균 분) 역시 남바람과 비슷한 심경이었는지 모른다. 도움이 필요했었다. 아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댈 수 있도록 보듬어줄 누군가의 존재가 간절히 필요했었다. 오히려 더 날카로운 가시를 자신을 향해 곧추세우는 당시의 아내(유혜정의 생모)는 당연히 그런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어느새 엄마를 닮아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부터 배워버린 딸 역시 그런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약했던 탓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내와 딸의 원망과 미움마저 끌어안고 짊어지기에는 아직 너무 젊었고 너무 약했다. 도망친 것이었다. 아내로부터도. 그리고 딸로부터도. 결과적으로 버린 것이 되었다.

어떻게 부모로서 자식을 저버릴 수 있는가. 이미 암으로 죽은 아내의 치료비로 막대한 빚을 지고 있던 터였다. 그다지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 이제 다시 남은 두 아들마저 큰 병이 들어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에 내놀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아이들이 없었으면. 차라리 부담만 지우는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그러나 차마 해서는 안되는 생각이다. 부모로서 감히 해서는 안되는 생각이다. 그래서 더욱 유혜정의 무심한 물음에 조금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단호히 반응한 것이기도 했다. 두려움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주 잠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아니 분명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되기에 차라리 자기가 죽겠다.

그래서 역시 유혜정도 병원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남바람에게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같았다. 아이들을 버리거나, 아니면 아이들만을 남기거나. 과거 아버지가 자신을 할머니 집으로 보냈을 때도 유혜정은 자신을 데려다 놓고 혼자서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었다. 남겨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남겨진다는 것은 버려진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두 아들 해와 달의 아버지인 남바람 자신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단지 핑계에 불과했다. 겨우 아이들을 버리고 떠날 이유가 생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 남겨진 아이들은 아무리 병을 치료하고 다시 건강해졌다고 전처럼 행복하게 아버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오로지 아직 어린 두 아이의 힘만으로 아버지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진 세상의 험악함과 냉혹함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어쩌면 오래전 유혜정 역시 누구보다 간절히 아버지의 존재를 필요로 했었는지 모른다. 몹시도 외롭고 힘들었을 때,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세상에 혼자가 되어 남겨진 그 순간에. 누군가 답을 들려주기를 바랐었다. 자기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그때 그녀의 곁을 지켜준 것이 바로 홍지홍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홍지홍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서로 비례관계에 있다. 만일 자신이 사랑하게 된다면 이 사람이다. 운명이라기보다는 필연이다.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버릴 수 있는가. 자식들은 버릴 수 없지만 자기는 버릴 수 있다. 아버지란 이처럼 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인가. 그래서 자신 또한 버려졌는가.

하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홍지홍의 곁에 머물기로 마음먹었듯 언젠가 아버지의 나약함과 이기 또한 받아들이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남바람이 있다. 사연을 안다면 누구나 동정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연민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는 그의 존재가 유혜정의 앞에 주어져 있었다. 여전히 아버지란 어렸을 적 기억 그대로 크고 무섭기만 한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맞선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너무나 큰 용기였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어린 환자들의 보호자는 당장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그리고 자신이 그를 위해 손을 내밀어 도와줄 수 있는 그저 작고 약한 존재에 불과했었다. 어느새 자신은 누군가를 굽어보며 그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커지고 힘도 세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아버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약하고 비겁한, 이기적인 한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처럼 그렇게 강하지 않다.

마침내 홍지홍이 싸움을 시작한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의지를 물려받는다. 아버지가 지키고자 했던 의사로서의 신념과 이상을 이어받는다. 다만 싸움의 방법은 자기가 선택한다. 아버지는 지키는 입장이었지만 지금 자신은 도전하는 위치에 있다. 의사로서의 자신의 실력과 명성을 이용한다. 뜻밖에 진성종(전국환 분)이나 진명훈(엄효섭 분)이나 악역이라기에는 순진한 구석이 많다. 홍지홍의 아버지 전이사장 홍두식에 대한 진성종의 대답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단지 자신들의 방식이 더 병원을 위해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된다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싸움이라지만 전혀 음험하거나 불길하지 않다. 딱 이대로가 좋다. 이 드라마는 사랑드라마다. 피비린내나는 살벌한 이야기는 사랑과 어울리지 않는다.

진서우(이성경 분)에게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저 친구라 여겼던 피영국(백성현 분)이 느닷없이 자신을 끌어안는다. 유혜정의 친구 천순희(문지인 분)와 안중대(조현식 분)의 전혀 생뚱맞은 관계도 흥미를 잡아끈다. 뜻밖에 천순희는 안중대를 밀어내지 못하고, 안중대 역시 충실하게 그녀의 주위에 붙어 있는다. 정윤도(윤균상 분)만 외롭다. 삼촌 정파란(이선호 분)이나 친구 조인주(유다인 분)이나 자기를 괴롭히려는 사람들 뿐이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자신의 마음까지 내맡긴다. 의외로 뻔뻔하거나 아니면 무척 태평하다. 원래 그런 성격이었다. 악역으로도 라이벌러도 써먹기 어렵다. 그냥 사람만 좋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모든 계량의 단위는 자본, 즉 돈이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고 환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을 한다. 의사도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한다. 가정도 꾸려야 한다. 모두가 돈이다. 아무것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로봇이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게 될지 모르지만 당장 병원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환자로부터 필요한 비용들을 받아내야 한다. 이런저런 사정들을 모두 봐주다가는 먼저 병원이 망할 수 있다. 그러면 대안은 없는가. 사람의 목숨이 무엇보다, 돈보다 중요하다 주장하는 이들에게 그 답이 있을지 모른다. 당장 병원비가 없어서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의외로 담담하다. 괜히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대놓고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절제되어 있다. 그보다는 정제되어 있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그냥 일상의 이야기 가운데 환자의 슬픈 사연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환자 부모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사랑한다. 장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편하다. 부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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