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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3.14 09:13

샐러리맨 초한지 "리니지, 나라를 잃은 공주가 마녀로부터 나라를 되찾다!"

오랜 봉건시대의 동화, 그러나 현대에도 딱 들어맞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결국 예상한 대로였다. 나라를 잃은 왕자가 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해 찬탈자에게 빼앗기고 세상을 떠돌며 지지자를 모은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다. 항상 의문이었다. 전쟁이란 필연 파괴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왕자가 왕위에 오르는데는 도대체 어떤 당위가 있는 것이었을까?

고작 30대의 나이다.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도 없다. 유방(이범수 분)조차 팽성실업을 창업하고 상당한 실적을 올린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천하그룹과 같은 거대재벌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유방이 직접 방송에 나와 이야기한 그대로 천하그룹의 손실은 천하그룹의 직원과 국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명분으로 회장의 자리를 꿰차고 앉은 것일까?

모가비(김서형 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는 둘째 문제다. 그것은 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할 명백한 범죄였다. 무엇보다 사람을 죽였다. 진시황을 죽였고 차우희(홍수현 분)을 죽이도록 사주했다. 유언장을 위조했으며 유령회사를 만들어 불법적인 수단으로 백여치(정려원 분)의 재산을 가로챘다. 공금에 손을 댔고 회사에 큰 손실을 입혔다. 오히려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처벌받지 않으면 이상하다. 그러나 그것과 백여치가 회장이 되어야 할 당위와는 무슨 상관인가?

하기는 어쩌면 유방 자신은 그러한 기업의 사유화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판한 적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유방은 스스로 팽성실업을 사유화하려 했었다. 엄연히 투자자가 있고 채권자가 있다. 그들이 보기에 이익이 된다고 여겨 팽성실업을 천하그룹이 인수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유방 또한 그에 따른 지분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부당하다 여긴 나머지 유령채권자를 통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사기를 벌이고 있었다. 그가 정의로운 이유는 팽성실업이 자기 소유이며 그것을 탐내는 천하그룹과 최항우(정겨운 분)야 말로 불의이기 때문이다.

유방이 반대한 것은 정통성 없는 소유자였다. 한 마디로 모가비에게는 천하그룹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 창업주와 외손녀라는 혈연관계가 있으며 따라서 법에 의해 지분의 상속을 보장받은 백여치만이 천하그룹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 물론 백여치의 지분이 천하그룹 지분의 과반을 넘지는 않는다. 그조차도 지주회사의 지분이지 천하그룹 전체의 지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방은 백여치를 회장으로 앉히기 위해 천하그룹을 부도의 위기로 내몰고 사기쳐서 얻은 돈으로 마치 구세주처럼 천하그룹의 회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고서도 수십년을 천하그룹 회장으로 군림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제왕적 총재 아닌가. 다행히 유방이 능력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단지 혈연을 이유로 회장의 자리를 승계하고 독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봉건사회가 아닌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봉건사회의 가치가 통용되는 부분일 것이다. 그것을 유방은 증명해 보여준다. 어느새 승자의 입장에 선 유방은 가장 먼저 백여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천하그룹 백여치 회장님이라고. 그녀는 공주다. 정당한 왕위계승권자다. 불의하게 마녀에게 찬탈을 당하고 온갖 고초를 겪다가 이제야 겨우 자신의 나라를 되찾은 다음대 여왕이다. 여왕의 부군인 유방은 왕이 될 터다. 그 과정에서 자행된 소소한 불법이나 위법들은 다지 정당한 왕위계승자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다.

"돈이 왜 돈이겄어유? 돌고 도니까 돈 아녀유?"

확실히 그 순간 유방은 더 이상 원래의 소시민이 아니었다. 여왕을 위해 나라를 되찾아주기 위해 속임수로 나라의 부를 유출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회사를 빼앗기는 것이 억울해서였다. 그래서 유령채권자를 동원해 천하그룹의 돈을 부당하게 속여 갈취했고 그것으로 다시 천하그룹의 위기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무나 당당하다. 천하그룹이란 원래 백여치의 것이었으니까. 목적이 정당하므로 수단 또한 정당해지고, 어차피 돈을 버는데 유령채권자와 같은 불법적인 수단이야 하나의 기술에 불과한 것이다. 소시민이라면 분노해야겠지만.

아니 소시민이기 때문에 그 순간에조차 불법이란 자각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모가비와 원래의 주인을 거부한 천하그룹의 탓이다. 유방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모두가 천하그룹과 모가비와 최항우가 잘못한 탓이다. 그래서 그는 불법을 저지른다. 범죄를 저지른다. 처벌 또한 감수한다. 그는 양심의 희생자가 된다. 그는 원래 뻔뻔하고 비굴하고 염치가 없었다.

유방이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을 천하그룹의 회장으로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가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령채권자를 동원해 수백억의 돈을 부당하게 빼돌렸다. 그런데도 전혀 죄의식이 없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자각조차 없다. 그 순간에조차 상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 그런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돈을 버는데 그런 정도는 기술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의 경영방식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어쩔 수 없이 유방이란 백여치에게 회사를 돌려줄 수밖에 없다. 하찮은 소시민이란 그렇게 기존의 방식에 물들고 만다. 그것이 옳다. 어쩌면 유방이야 말로 한국의 기업문화가 갖는 가장 어두운 그늘이 아니었을까. 새삼 그것을 깨닫는다.

그야말로 한국사회의 부조리란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한 눈에 보여주는 드라마였을 것이다. 모가비가 저지른 살인과 살인교사는 그냥 범죄일 뿐이다. 말할 가치도 없다. 공금유용에 대해서는 아마 고인이 된 진시황부터가 할 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법정에서 거짓증인을 내세워 거짓으로 증언을 함으로써 판결응 유도한 것이야 말로 그 극치를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병법으로 따지면 차시환혼에 수상개화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교란시키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모가비가 원래 범죄자이기에 그러한 행위가 정당화된다면 범죄자를 유죄로 만들기 위한 고문과 협박과 같은 수단 또한 정당화되는가? 증거를 취사선택하고 증언을 강요하고 피의자를 압박하여 유죄를 이끌어내는 과거의 관행은 옳은가?

최항우는 당연히 그런 방식에 익숙하다. 백여치 역시 그런 방식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다. 유방은 오히려 좋아한다. 심지어 검찰인 박검사(김승오 분)조차 그다지 그런 방식을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박검사의 장래 또한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명백한 범죄자이기에 그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거짓증인을 세우고 거짓증언을 동원할 정도라면 과연 그의 앞으로의 검사로서의 행보란 어떠할 것인가. 확실히 엘리트라서 출세하기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드라마였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왕위를 잃고 비천한 신분이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그러나 과연 왕위를 되찾을 생각만 하고 있었을 왕자는 과연 얼마나 자신이 떠돌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넓고 깊게 보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외된 이들을 생각이나 했을까? 자신과 같은 외로운 처지의 이들에 대해 고민이라도 했을까?

백여치를 보면서 그 답을 얻었다. 단지 왕위를 되찾을 생각 뿐이었을 것이다. 천하그룹을 되찾을 생각 뿐이었다. 모가비는 처벌을 받았지만 백여치에게는 아무런 고난도 그에 따른 시련이나 갈등도 고민도 없었다. 반성도 자각도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백여치였다. 천하그룹 창업주의 외손녀 욕쟁이 백여치. 하기는 천하그룹을 경영하는데 굳이 아랫세상을 보고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로열패밀리다. 왕족이다.

나라잃은 왕자의 이야기가 이토록 불쾌한 이야기일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다. 나라잃은 왕자가 왕위를 되찾기까지의 이야기가 이처럼 부조리하고 모순투성이의 기분나쁜 현실을 담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것을 의도한 것이라면 성공했다 할 수 있겠다. 진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드라마였다.

사실 굳이 이렇게까지 멀리 올 필요는 없었다. 모가비는 진시황 회장의 죽음과 관련해 그동안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충분히 조기에 퇴장시킬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천하그룹 회장의 자리를 두고 최항우와 백여치가 격돌한다. 정확히는 백여치를 앞세운 유방이 최항우와 부딪힌다. 문제는 그럴 경우 백여치의 경영권승계에 대한 비판여론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이 또한 제작진의 백여치의 승계를 위한 배려차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최항우가 아닌 모가비라면 백여치는 문제없이 모가비의 범죄에 편승해 천하그룹에 대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모가비를 쓰러뜨리기 위해 장량(김일우 분)은 사기까지 치고, 유방은 사기에 사칭까지 저지르고, 차우희는 죽음의 위기까지 겪게 된다. 백여치를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 이 또한 현실 아니겠는가. 혈연을 통해 계승되는 권리에 대해 그 혈연을 붙잡은 유방을 통해 성공신화를 그린다. 결혼이야 말로 가장 큰 성공이다.

차라리 중세시대 이야기였다면 재미있을 뻔했다. 그러나 현실의 이야기이기에 씁쓸하면서도 생각하는 바가 있다. 박범증의 모가비 사랑이 참으로 눈물겹다. 모가비는 끝내 자기 자신을 감당 못하고 무너진다. 과연 최항우와 차우희의 앞날은. 우울한 코미디였을 것이다. 무겁다.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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