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3.09 08:33

보통의 연애 "연애... 했어요, 우리!"

비로소 헤어짐으로 보통의 연인이 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헤어질 수 있다는 것도 사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헤어질 수 있을까? 비록 남들처럼 사랑하지는 못했지만 남들처럼 헤어질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두 사람은 자신을 얽메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진심으로 사랑했고 진심으로 헤어질 수 있었다.

참 사람이란 이기적이다. 어차피 술을 마신 것도 자신이었다. 사람을 친 것도, 술먹고 운전한 사실이 들통날까봐 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 한 것도, 설사 피해자가 이미 죽어 있었다 판단했더라도 그를 암매장하려 한 것도 다름아닌 자신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 피해자는 살아 그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 피해자를 죽였다. 누구의 탓이었을까?

그렇게 몰아세웠다. 슬퍼할 틈조차 없이. 피해자의 동생이건만 그러나 한재광(연우진 분)에게는 형의 죽음을 받아들일 작은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받아들일 기회조차 없었다.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어머니(김미경 분)의 슬픔을 보았고, 그 슬픔에 떠밀려 도망치기 급급했다. 쿨한 게 아니었다. 냉정하다거나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진심으로 슬퍼하고 진심으로 분노할 기회가. 진심으로 원망할 기회도. 모든 것은 어머니 신여사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단지 아들이 어머니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뿐이라 그 손을 잡는다. 아들은 죄인이 된다. 자신은 피해자가 된다.

김주평(이성민 분) 역시 마찬가지다. 돈을 주지 않는 사장을 원망하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을 막은 음주운전단속반을 원망하고, 그리고 술을 원망한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믿었기에 김윤혜(유다인 분)는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차라리 아버지의 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면. 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차라리 아버지의 죄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를 믿었다. 아버지의 무죄를 믿었다. 아버지의 유죄를 믿는 세상과 그녀는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녀 또한 아버지와 공범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어머니(이주실 분)을 이 세상에 붙잡아두는 족쇄였을 것이다.

차라리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세상을 떠나는 어머니(이주실 분)의 마음은 얼마나 홀가분할까? 혹시라도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부당한 일에 휘말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어머니의 아들은 죄를 지었고 그 죄값을 치르려 한다. 그것은 어머니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그의 딸에게 말한다. 저 갈 길을 가라고. 아버지도 없이, 이제는 세상을 떠날 할머니도 없이. 더 이상 딸인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은 없다.

어머니가 그를 아들이라 불러주며 한재광 역시 비로소 처음으로 형의 죽음과 마주한다. 아들의 죽음과 마주하기가 무섭다며 자신을 불러세우는 어머니 앞에 그는 처음으로 아들로서 서게 된다. 그리고 동생으로서 형의 죽음과 마주한다. 그리고 분노한다. 무려 7년만에 그는 진심으로 피해자의 동생으로서 형을 죽인 살인자에게 분노하고 원망하고 절규한다. 그에 비하면 7년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아들의 죽음 한 가지만을 붙잡고 살아온 어머니 신여사의 모습은 얼마나 홀가분한가? 그토록 원망하고 분노하고 증오해 왔었다. 살인자를 탓하고, 그 가족을 탓하고, 자신을 탓하고, 세상 모두를 탓해왔었다. 이제 그것도 끝이다. 하지만 한재광은 그것이 시작이다.

그 순간 김윤혜의 할머니가 죽었다. 한재광이 형의 죽음과 마주하는 순간 김윤혜 또한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 온 할머니를 보내고 있었다. 오래전에 흘려보냈어야 했을 시간이 급하게 다가온다. 그 시간을 한재광은 김윤혜와 함께 하지 못한다. 물론 김윤혜 역시 한재광과 함께 하지 못한다. 고작 짧은 시간이지만 그 엇갈림에는 7년이라는 시간이 담겨 있다. 오랜 저주에서 풀려나듯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며 씨앗은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다가 이내 스러져 썩기 시작한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김윤혜의 방은 어느때보다 밝아 있다.

다시 7년 전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7년 전 그 장소에서 두 사람은 마주선다. 한재광은 그때 그녀에게 해주지 못한 말을 해준다. 김윤혜의 아버지는 한재광의 죽은 형 한재민(권세인 분)이 용서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녀는 누가 용서하는가? 김윤혜의 아버지 김주평은 한재민이 죽은 이상 그 누구로부터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으로부터도 용서받지 못한다. 그러나 김윤혜는 아니다. 김윤혜는 단지 김주평의 딸일 뿐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누구도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 용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녀도 안다. 7년 전 강으로 뛰어들었을 때처럼 아버지가 저지른 끔찍한 죄는 그녀를 옭죈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일 뿐임을. 그녀는 아버지의 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버지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댓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딸로써 그것을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아버지 자신의 몫일 뿐이다. 아버지와는 별개로 그녀는 그녀의 삶을, 시간을 살아간다. 아버지의 딸이기에 감당해야 할 것들과 함께. 그래서 굳이 아버지의 딸이기 때문에 잘리는 것을 거부하던 직장에서 스스로 먼저 그만둘 것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비로소 햄버거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별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버지의 딸이다. 그래서 그 또한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형을 죽인 살인자의 딸이다. 둘이 서로 마주하는 순간 그 사실은 결코 잊혀질 수 없다. 그는 피해자의 동생이고, 그녀는 살인자의 딸이다. 오히려 담담히 받아들일 수 없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구나. 우리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겠구나. 그리고 보통의 연인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 결별을 선언한다. 그 순간 그들은 온전한 보통의 연인이 되어 있었다.

구원이었을까? 아버지의 딸이었고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살인자의 딸이었고 피해자의 동생이었다. 7년 전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 자신을 두고 여행을 떠났었다. 그들이 처음 마주쳤던 그곳. 그들의 감정이 서로 엇갈리던 그 강가에서. 그녀는 물로 뛰어들었고, 그는 물로 뛰어든 그녀를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7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돌려주며 온전한 연인이 되어 헤어진다. 이제 그들은 비로소 제대로 살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7년전 보았던 그 모습처럼 항상 사람들의 뒷모습만을 찍던 한재광이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처럼. 같은 공간에서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엇갈리게 된다. 김윤혜도 머리를 풀었다. 햄버거를 먹었다.

보통의 연인이 되기까지. 보통의 연인이 되어 보통의 사랑을 하기까지. 그래서 마침내 헤어지기까지. 아마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사랑하기에 헤어질 수 있다. 헤어질 수 있어 비로소 사랑하게 된다. 헤어질 수 있도록 사랑한다. 보통의 사람처럼. 연인처럼.

물처럼 담백하다. 눈물처럼 짜지 않다. 끈적이지도 않는다. 흘러간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다.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랑의 기억만을 남기고 모든 것은 시간 속에 흘러 떠내려간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살아갈 힘을 준다. 사랑할 수 있다는. 사랑할 수 있었다는. 사랑을 함으로써 사람을 살아간다. 사랑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고맙다는 때늦은 고백이 그래서 얼마나 절절한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서로를 추억하게 되었을 때 흐뭇한 웃음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건넬 수 있지 않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만난 어느 강물처럼.

슬프지만 그래서 오히려 웃을 수 있다. 비극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어떤 희망을 보게 된다. 강물 위로 햇빛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고, 오늘은 오늘의 바람이 분다. 오랜만에 어질러진 방을 청소했다. 기분이 좋다. 행복해지는 드라마다. 좋다. 마음이 즐겁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