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6.07.06 12:47

[공소리 칼럼] “여자라서…”, 여자로 사는 건 이상한 일이다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두목 행세를 한다, 기가 세다는 뜻의 ‘Bossy’라는 단어가 있다.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는 대학 강연에서 “여태까지 ‘Bossy’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 있냐”고 종종 질문한다. 놀랍게도 ‘보시’라는 단어를 들은 여자는 90%이며, 남자는 10%가 들어봤다고 대답했다. 보시라는 단어에는 ‘나는 이 아이에게 수치심을 주고 더는 크게 말하지 않도록 만들 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실제로 팝스타 비욘세는 “나는 보스 행세를 하는 여자가 아니라 내가 바로 보스다”고 말한 바 있다(lnc기사참조).

다른 사람을 쥐고 흔들고, 상관 행세를 한다는 부정적인 이 단어는 여자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 우리는 여자가 주도권을 잡는 것에 대해 관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차별은 곧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

초등학생 때 여학생들에게 “깡패, 조폭, 폭력배” 등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는 일은 흔했다. 그 시기의 여학생들은 소위 기가 셌다. 짓궂은 남학생들을 상대로 힘과 논리로 제압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폭력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여학생에 비해 남학생에게 그런 별명은 많지 않았다. 건전한 아이에게 폭력자라는 타이틀을 거부감 없이 표현하는 건 “보시”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다.

▲ 치타 ⓒK-WAVE, 케이컬쳐 (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관련 없음)

여자에게 가하는 무서운 편견

“처녀 과부, 남편 많은 처녀. <김동인>”, “성욕 생활이 무절제하고 방종하며 타락한 여자. 그런 사람 치고 훌륭한 사람이 없다. <김기진, 잡지 신여성, 1924>”, “피임법을 알려는 독신주의자, 성적으로 방종한 여성. <잡지 개벽, 1921>”, “남편을 다섯 번 갈고도 처녀 시인 행세하려 한다. <잡지 별건곤, 1927>”뿐만 아니라 전영택은 현대문학지에 ‘내가 아는 탄실 김명순’을 실었으며 김 작가에 대해 “변태적인 방종의 생활”이라고 정면으로 비난했다.

1920년대 문인, 언론인, 배우 등으로 활동했던 김명순 여류작가에게 가차 없고 폭력적인 평을 한 것은 당대 유명 문인들과 각종 잡지이다.

김명순은 여성 최초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5개 국어를 구사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여성 작가였지만, 일생 동안 곤고한 “여자”라는 이유로 성적인 조롱거리와 편견 속에서 살아야 했다.

남자의 공공연한 외도는 묵과하고 여자는 집안일만 살피는 것이 당연했던 저 시대에 과연 김 작가가 남자였어도 도전적인 비난과 조롱의 유행 거리가 됐을까? 거의 백 년이 흐른 지금은 여성의 사생활과 성적 스캔들에 얼마나 부드러운 세상일까?

여자로 사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자들의 충격적인 사연이다. “학생시절에 길거리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스타킹을 벗어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면접에서 성적으로 불쾌한 말을 들었다. 명백한 성희롱이었지만, 반박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한동안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음란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내 생활 전반을 알고 있었다. 장난전화라 여기기에는 소름끼치는 스토킹이었다”고 말하는 여자들에게 왜 그런 일을 당했냐고 물으면 그녀들도 답을 내릴 수 없다.

스토킹을 당했다는 여성은 “살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성적폭력을 당했다. 여자로 사는 것은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다”고 말했다.

남자라면 더 좋은 대우를 받았을까.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했었다는 한 여성은 “야간이라 더러 술 취한 손님이 진상부리는 것, 다짜고짜 반말인 손님, 심지어 욕하고 간 손님도 있었다. 어떤 손님은 밤에 여자 혼자 일하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 말 자체가 무서웠다”며 “나중에 주간 알바로 이동하고, 야간에 일하는 오빠에게 들으니 내가 겪은 일을 더는 겪지 않더라. 야간 알바하는 오빠는 남성적이고 만만해 보이는 외모가 아니었다. 내가 어린 여자이기 때문에 진상 손님을 당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여자로 살면서 약하거나, 어리거나, 얕잡아 볼 수 있다는 편견 때문에 겪는 이상한 일들이 존재한다. 이상한 일을 겪었다는 여자들이 더 나이가 많고,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강해 보였다면 “여자로 사는 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어렸을 적 남학생보다 더 성숙하고 때때로 더 강했던 여학생을 폭력배라 부르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약한 여자에게 폭력적인 태도와 행동이 괜찮다고 느껴지는 것은 문제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남녀노소를 떠나 우리는 얼마나 약한 여자에게 가혹했는지, 누군가 여자라서 고충을 겪고 있는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주도적인 여자가 특이하고 좋지 않은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도 되고, 불쌍한 여자를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소재거리로 전락시키는 것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이상한 일을 겪는 증언을 동정하고 인지하는 게 응당하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