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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3.03 08:20

위대한 탄생2 "생방송이 시들한 이유, 오디션에 드라마가 없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심사평, 멘토가 심사위원이 된 데 따른 문제.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사람들이 굳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찾아보려 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꿈과 열정, 다른 하나는 그를 심판하는 것이다. 아직 묻혀 있는 재능과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스스로 심사위원이 되어 판단한다. 그 가운데 특히 한국에서는 후자의 요구가 강하다.

워낙 점수매기기에 익숙한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점수로써 계량된다. 점수는 또한 순위로써 계량된다. 점수는 정의이고 순위란 질서다. 점수와 순위에 따른 무한경쟁과 줄세우기의 결과 그것은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어 버린다. 사람이 갖는 꿈과 열정이, 재능과 가능성이, 가진 바 실력이 그렇게 점수라고 하는 숫자로서 계량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순위가 매겨지고 그 순위에 따라 탈락여부가 결정된다. 어느새 시청자 또한 심사위원이 되어 그 결정을 내리려 한다.

어째서 오디션프로그램만 방영되었다 하면 심사위원의 자질과 심사의 내용에 대한 공정성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시청자 자신도 심사위원이다. 자기 나름대로 방송을 보며 심사를 한다. 그러나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정의란 한 가지다. 순위 또한 그를 기준으로 삼는다. 시청자인 자신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대해서도 그래서 항상 끊이지 않고 불거지고 있는 것이 청중평가단의 자질논란이었다. 정의롭지 못하다. 정연하지 못하다.

그래서 야단을 친다. 잘못을 들추고 비판을 가한다. 오디션프로그램에서 독설캐릭터들이 인기를 모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심사위원은 시청자 자신이다. 그렇게 자격없는 참가자를 걸러내고 그 가운데서 가장 적합한 참가자를 골라낸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또 다시 자질논란과 공정성논란이 불거진다. 심사위원 누가 누구를 편애하고, 또 심사위원 누구는 누구에 대해 불편해한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스스로 심사위원이 되어 판단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그게 문제다. 어떠한가? 결국 <위대한 탄생> 시즌2 생방송 4주차 TOP6경연에서도 최하점은 8.7점이었다. 최고점은 박정현이 50kg에게 준 9.8점. 사실 10점 만점에 9.8점이면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절로 환호가 터져나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덤덤하다. 최하점이 불과 1.1점 차이가 나는 8.7점이고 어지간하면 거의 9.0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변별이 없다. 뭐가 그렇게 잘했는데? 자극이 없으니 드라마도 없고 드라마가 없으니 재미도 없다.

작년 시즌1에서의 손진영의 경우를 보자. 첫생방송의 <이 밤이 지나면>은 당시 생방송 무대 가운데 제법 괜찮았던 무대로 분류되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심사위원 점수는 낮았다. 그 주에 시청자문자투표에서 손진영이 2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손진영에 대한 누가 보더라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낮은 점수가 오히려 시청자를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2에서는 그렇게 눈에 띄는 낮은 점수가 없다. 높은 점수도 무감동하고 점수를 봐도 흥미가 덜한다. 하기는 그래서 시즌2에서도 가장 크게 불거지고 있는 것이 점수퍼주기 논란이다. 너무 점수를 많이 준다.

역시 멘토에게 심사위원을 겸하도록 한 부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중음악계의 선후배이고 동료들이다. 함께 <위대한 탄생>에 멘토로서 출연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그 상대멘토가 장차 자신의 멘티의 점수를 매기게 된다. 코치와 심사위원을 별개로 둠으로써 오히려 코치와 심사위원 사이의 갈등관계까지 은연중 드러내고 있던 KBS의 <TOP밴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때도 시청자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봄여름겨울의 심사위원 점수와 심사평이었다. 그런 반발할 여지조차 없이 좋은 말만 하려는 것이 어느새 지겹다.

모든 대중문화의 컨텐츠란 드라마다. 드라마란 곧 갈등이다. 긴장이다. 위기가 있고 갈등이 있고 그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이완의 순간이 있다. 거기에서 재미란 나온다. 오디션도 마찬가지다. 갈등하고 긴장한다. 궁지에 내몰리고 마침내 구원받는다. 탈락하는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과 남은 이들의 간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환희. 골이 깊으면 당연히 산도 높다. 대비된다. 끝내 탈락되어 사라지고 마는 이들과 살아남아 모든 것을 쥐게 되는 이들이. 최악의 점수와 심사평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와 오히려 최고의 점수와 평가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 사람들은 그 잔인한 드라마를 보고 싶은 것이지 훈훈한 덕담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은 기분이 좋지만 그래서야 드라마로서는 너무 밋밋하다.

무대는 항상 그 다음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무대 또한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갈등도 없고 긴장도 없으니, 아예 드라마라 할 만한 것도 없으니 무대에 대한 집중도도 떨어진다. 캐릭터가 중요한 이유다. 이 사람은 반드시 붙어야 한다. 이 사람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다. 그러나 아마도 파업의 여파인지 그런 것은 어디에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심사위원은 욕을 들어야 한다. 참가자가 듣는 욕 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심사위원이 매긴 점수를 보고 시청자는 자신이 매긴 점수와 비교한다. 심사위원 또한 심사의 대상이다. 기준을 얻고 그 책임을 돌릴 대상을 찾는다. 그 과감한 비판과 점수 가운데 시청자는 자신이 참가자들의 우위에 있음을 확인한다. 점수를 매기는 입장이다. 순위를 결정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착해 놓으면 그런 재미가 사라진다. <위대한 탄생> 시즌2가 저조한 이유다.

시즌1에서도 불거졌던 문제들이다. 아니 시즌1에서는 오히려 나았다. 아니다 싶은 무대에 대해서는 점수도 심사평도 가차없었다. 대신 심사위원 자신도 적잖은 시청자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어야 했다. 시청률도 준수하게 잘 나왔었다. <위대한 탄생>이라고 하는 프로그램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도 세간에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시즌2는 그보다도 더 착해졌다. 착해진 대신 모호하고 두루뭉수리해졌다. 누가 우승하고 누가 탈락할 것인가 그다지 흥미도 관심도 없다.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우승하고 누가 탈락하고, 그 이전에 누가 누구로부터 몇 점을 받고. 가장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그 다음 좋은 것은 나쁜 것이다. 가장 안좋은 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다. 9점만 넘어가면 설사 떨어지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긴장이 없다.

그리고 아마 이번주 미션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주제가 밴드음악이다. 그러니까 밴드를 보려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밴드는 오디션의 대상이 아니다. 오로지 참가한 참가자들만이 오디션의 대상이다.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게 나오지 않는가? 단지 개인, 혹은 팀으로써 자기 스타일에 맞게 밴드의 음악을 부른다. 가수의 경연장이다. 연주자의 경연장이 아니라.

에릭남의 목소리는 역시 밴드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게 밴드란 단지 반주다. 목소리에 힘이 없다. 밴드의 연주를 뚫고 뻗어나가는 힘이 부족하다. 노래는 역시 잘한다.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무대메너도 훌륭하다. 하지만 어차피 에릭남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다. 밴드음악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에릭남이 우승해야 하는 당위를 보여주는 쪽이 현명하다. 지금은 성공하고 있다.

구자명은 너무 힘을 빼고 있었다. 터져줘야 할 곳에서는 터져주어야 할 텐데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나 밋밋했다. 비로소 안정감은 갖추었지만 원래의 매려은 잃은 듯한 모습이다. 장성재도 마찬가지다. 장성재는 그나마 무대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전은진의 경우도 어둠의 마성을 되찾은 대신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를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전은진의 경우는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나은 편이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무척 아쉬웠을 것이다.

배수정은 이제는 믿고 보는 참가자가 되었다. 차라리 배수정의 드라마를 보다 강조해 보여준다면 어떨까? 그녀를 간판으로 내세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녀를 중심으로 오디션을 재구성한다. 스타성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제대로 꾸며 보여지지 못했다. 담백한 노래에서도 담백한 매력을 선보인다. 배수정은 이미 프로의 무대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위대한 탄생>은 음악프로그램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예능프로그램이다. 예능프로그램이란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 <위대한 탄생>이 줄 수 있는 재미란 무엇인가. 어차피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가능성은 거의 검증되어 있다. 남은 것은 시청자다. 아쉽다. 더욱 분발해야 한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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