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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3.01 09:35

보통의 연애 "결코 보통이 될 수 없는 이들의 역설, 그러나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오랜 판자를 들어낸 창으로부터 내리쬐는 말간 아침햇살에 더욱 서러운 희망을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아버지가 막아놓은 창문의 판자를 낯선 남자가 찾아와 떼어낸다. 볕이 들지 않던 어둡던 방에 아침이 되니 말간 햇살이 비쳐든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햇살이 너무 밝다.

역설일 것이다. <보통의 연애>라니. 하지만 보통 그렇지 않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준다. 그래서 항상 그리워한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건만 그를 만나기를 그리워한다. 위로받을 수 있기를,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꿈꾼다.

살인자의 딸이다. 일하는 직장 바로 앞 게시판에 붙어 있는 수배전단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다. 그녀가 원해서 그리 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쫓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녀는 살인자의 딸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얻은 직장마저 잃을 위기에 놓이고, 사랑마저 포기해야 했으며, 사람들의 차별어린 시선 속에 스스로 행복에 대한 기대마저 저버려야 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그것은 도저히 씻을 수 없는 깊은 낙인이 되어 버렸다.

살인범에게 죽은 피해자의 동생이다. 형이 그렇게 죽었다. 아직까지도 죽은 형의 망령이 그를 붙잡고 있다. 여자는 행복을 마주할 자격이 없기에 결혼식장을 찾을 수 없고, 남자는 행복을 마주할 수 없기에 결혼식장을 찾지 않는다. 8년이나 지나서까지 살인범을 찾기 위해 범인의 딸을 찾는 집요함 뒤에는 감출 수 없는 권태가 보인다. 하기는 살인이란 미처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정사실로써 받아들여야 하는 강제된 이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죄가 된다.

상처투성이의 두 남녀가 만났다. 서로 다른 처지에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아니 오래전에 이미 보았을 것이다. 갑작스레 닥친 일들로 여자 김윤혜(유다인 분)은 오래전 물에 뛰어든 적이 있었고 그것을 남자 한재광(연우진 분)은 지켜보고 있었다. 연민해서는 안되는 상대를 연민한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한재광이 떼어낸 창의 판자는 한재광 자식의 마음에 쳐진 벽일 것이며, 김윤혜가 막연히 바라보고 있는 한재광에 대한 기대는 햇볕의 따뜻함에 대한 그리움이다. 허락되지 않을 것이기에 다음날 서울로 떠난다는 한재광에게 하룻밤 잘 것을 말하는 김윤혜의 말투는 절절하도록 담담하다.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었으면.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었으면 싶고 누군가 내민 손을 잡아주었으면 싶다. 결코 어울릴 수 없는 한 쌍의 남녀, 절대 허락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이 시작되려 한다. 남들처럼 행복하게.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버지의 사진이 있는 수배전단을 가리켜야 하는 김윤혜와 그런 김윤혜에게 그 피해자가 자신의 형임을 이야기해야 하는 한재광의 마음이란 어떠했을까? 속죄니 용서니 하는 말을 떠올리기에도 그들의 주위는 꽉 막혀 있다. 죽이고 죽은 이가 남긴 부채로 인해  그들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죄란 비단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까지 그 죄는 미치게 된다. 아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란 가장 사랑하는 이로 하여금 도저히 사랑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일 게다. 사랑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사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워한다. 사랑하는 것을 증오하고 원망하게 한다. 상처는 남아 덧나고 지독한 악취를 뿜으며 썩어간다. 죄는 자기가 지은 것이지만 그 죄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남은 사람은 어찌하는가?

속죄의 뜻으로 날마다 동네를 청소하는 늙은 어머니와 그 죄를 짊어지고 오욕 속에 살아가야 하는 딸, 더구나 그 피해자의 가족마저 죽은 이로 인한 마음의 짐을 안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결국은 두 사람 다 행복할 수 없음을 알기에 결혼식장을 찾지 않는다. 찾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희망을 기대한다. 아침 햇살처럼 밝은 나날을 꿈꾼다. 절대 보통이 되지 못할 보통의 연애를 위해서. 결코 보통이 될 수 없는 보통의 일상을 위해서.

단편이 갖는 장점이다. 군더더기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전달된다. 인물의 감정이 오롯하게 한정된 시간 속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절망과 기대와 희망과 체념과 절망이 숨가쁘게 교차한다. 오히려 아무런 감정 없이 담담하기까지 한 영상과 연기가 슬픔을 더욱 극대화한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기에 입고야 마는 상처들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다. 압축된 만큼 깊이와 밀도를 더한다.

의외의 수작이라 할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순간 몰입해서 끝까지 보고 말았다. 유다인의 연기가 섬세하다. 연우진의 감정 또한 매우 치밀하다. 그보다 더 치밀한 것이 영상과 연출이다. 철저히 관객이 된다. 관객이 되어 그 안으로 들어간다. 관객이며 그 당사자다. 비극에 몰입된다.

살인자의 딸임을 밝히고 그 살인자를 쫓아 찾아왔음을 알린다.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고 희망은 체념이 된다. 깊어진 상처 위로 따뜻한 피가 흐른다. 비가 내린다. 비는 상처를 덧나게 하지만 흐르는 피를 씻어주기도 한다. 눈물은 상처로부터 비롯되지만 상처를 치유해준다. 비는 눈물이다.

4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이 더욱 마음에 든다. 이야기가 풍부하거나 다양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선명한 디테일이 있다. 치밀하게 오로지 전하고자 하는 바만을 쫓으려 한다. 집중하게 된다. 좋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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