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29 10:50

샐러리맨 초한지 "그게 왜 사기여유? 병법에 있는 전술이잖아유?"

기득권보다 더 기득권을 닮아가는 유방의 뻔뻔함에서 더욱 첨예한 현실의 모순을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고대중국의 군사사상을 집약한 그 정수라 할 수 있는 최고의 병법서 <손자병법>은 바로 이 말로써 시작되고 있다.

兵者詭道也

싸움이란 원래 서로를 속이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가려는 것처럼 보이고서는 왼쪽으로 가고, 다리를 걷어차려는 것처럼 속이고서 머리를 때리고, 업어치기를 하려는 듯 하다가 받다리 후리기로 자빠뜨린다. 하늘을 속여 강을 건너고, 시체에 숨을 불어넣고, 기와장을 던져 구슬을 구하고, 대들보를 훔쳐 기둥으로 대신한다. 미녀를 보내 판단을 흐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상대를 속여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도록 하는가에 싸움의 승패는 달려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라면 싸움이란 결국 적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적이란 쓰러뜨려야 하는 대상이다. 반드시 배제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적을 죽여야 한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승리하여 적을 무찌르기 위해 모든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그것은 적을 무찌르기 위한 칼이나 창과도 같다. 총과 대포와도 같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칼이나 창, 총과 대포를 보통의 일상에서까지 쓸 수 있는가.

전장에서 칼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영웅적인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총을 쏘고 대포를 발사하는 모든 행위가 승리를 위한 영웅적인 행위로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누군가 일상에서 칼을 휘두르려 한다. 총을 들고 대포를 겨눈다. 과연 그는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의 개인으로 여겨질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있다. "범죄자" 혹은 "사회부적응자",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은 영웅적인 행위겠지만 일상에서 칼을 휘두른다면 그는 범죄자일 수밖에 없다. 아직 현실을 모르고 칼을 휘두르고 있다면 그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도태되어야 할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일상이란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서로 공존하는 사회다. 그런데 적의를 가지고 칼을 벼리고 총을 겨눈다. 용납될 수 없다.

책략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공공의 규범이라는 것이 있다. 도덕이 있고 윤리가 있고 무엇보다 법이 있다. 모가비(김서형 분)가 천하그룹의 총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나름대로 동정할만한 여지가 있음에도 악녀로 불리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 규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가치를 부정했고 법을 어겼다. 사람을 죽이고 유서를 조작했다. 백여치(정려원 분)의 재산을 빼앗는 과정에서도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악이다.

만일 적을 속이고자 불법까지 동원하는 것도 병법에 쓰여진 책략이기에 정당화되어진다면 모가비 역시 단지 도적을 잡기 위해 먼저 왕을 잡았을 뿐이고(擒賊擒王), 대들보를 훔쳐 기둥으로 바꾸었을 뿐이며(偸梁換柱),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고(瞞天過海) 나무 위에 꽃을 피우려 했을 뿐(樹上開花)이다. 어느새 자신을 의심하고 위협하고 있는 진시황 전회장을 죽이고, 그의 유서를 조작했으며, 자신이 가진 바를 이용해 백여치를 속여넘기고 궁지에 빠뜨렸다. 그녀는 잘못했는가?

단지 천하그룹이 팽성실업을 인수하려는 의도를 저지하겠다고 있지도 않은 유령회사를 만들고 거짓투자자를 꾸며낸다. 그것으로 부당하게 천하그룹의 돈을 갈취하려든다. 아무리 팽성실업을 노리는 재벌기업 천하그룹과 그를 주도하고 있는 최항우(정겨운 분)의 행사가 부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기는 팽성실업 자체가 불법을 바탕으로 세워진 회사이기는 하다. 팽성실업의 주력제품은 천하그룹에서 직무발명된 제품이었고, 천하그룹의 총수와 직원이 천하그룹의 이익에 반해 자의적으로 투자하여 살렸다. 장량(김일우 분) 또한 팽성실업을 살리고자 업무를 수행하던 중 얻은 정보를 활용하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그렇게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고도의 기만적인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라마는 소시민을 대표하는 유방(이범수 분)과 기득권을 상징하는 재벌기업 천하그룹과 엘리트인 최항우와의 대립구도를 통해 현실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유방이 천하메디 인천공장에서 공장노동자들과 함께 파업투쟁을 벌이는 모습은 그러한 유방의 성격을 더욱 강조해 드러내는 부분이다. 일견 통쾌하다.

하지만 정작 그러한 소시민인 유방이 천하그룹을 사유화하려는 백여치에게 동조하는 부분에서는, 더구나 천하그룹을 상대하기 위해 천하그룹보다 더한 법을 무시한 불법과 탈법까지 동원하려는 모습에서는 과연 이같은 현실의 모순들이 비단 소수의 기득권에 의해서만 저질러지는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된다. 재벌이 기업을 사유화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마저 무시하며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려 할 때,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재벌이라고 하는 기득권 자신만의 문제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재벌이 범죄를 저질러도 그것을 쉽게 용서하는 일각에는 대중의 동의가 있다. 당장은 기득권을 비판하지만 그를 닮고 싶은 동경이 있고 언제든 그를 닮고자 하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을 바로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와 주인공 유방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격의없이 거침없는 행동들은 그의 소시민적인 친근감을 강조하고, 그러면서도 어느새 기득권과의 싸움에 익숙해지며 아무렇지도 않게 불법과 탈법을 말하는 장면에서는 그같은 역설적인 모순들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어쩌면 소시민이기에 유방은 더욱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그들에 물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엘리트로써 엘리트다운 자기만의 확고한 중심을 가지고 있는 최항우의 행보란 얼마나 당당한가. 자기가 룰을 만들고 자기가 만든 룰을 자기가 지킨다. 악역인 듯 보이지만 차우희(홍수현 분)를 향한 그의 수줍은 진심은 그러한 그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는 유방보다도 더 정의롭고 신사적이다. 원래 초한지에서도 항우가 유방에게 패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너무 순진하다. 어째서 엘리트가 엘리트인가를 보여준다.

아무튼 결국 모가비의 목을 조르는 것은 그녀 자신, 그녀 자신의 자격지심과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릇의 크기일 것이다. 천하그룹을 담기에는 너무 작다. 비서실장으로서는 유능했지만 천하그룹의 총수가 되기에는 그녀의 크기가 너무 작다. 그렇게 길들여져왔다. 십수년을 진시황 회장의 비서로 있으면서, 더구나 정당하지 못한 수단으로 지금의 자리를 손에 넣었다. 가장 가까운 박범증(이기영 분)마저 그녀는 잃을 위기에 있다. 모가비의 한계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모가비 자신이 그 끝을 예고한다.

너무나 태연히 불법을 말하고 탈법을 행하는 유방의 모습이 소름끼친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정의롭다.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천하그룹은 당연히 백여치의 것이며, 천하그룹과 최항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동산투기를 비판하면서도 어느새 자신도 그 흐름에 한 다리 걸치고 싶다. 소시민이란 바로 그러한 방어막이 되어준다. 기득권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더 지독스럽게 기득권을 닮아간다. 그게 소시민이다.

"사기는 최항우처럼 남이 피땀흘려 이루어 놓은 걸 힘으로 몽땅 빼앗으려 드는 그런 게 진짜 사기여! 내 말 틀려요?"

그래서 설사 법을 어겼어도 내가 하는 것은 사기가 아니다. 천하그룹과 최항우가 나쁜 거지 내가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다. 기득권이 나쁜 것이지 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만족을 얻고 변호를 하고 변명을 한다. 그래서 소시민이란 편하다. 그것을 본다. 아프게도. 너무나 현실처럼. 

박범증이 유방과 백여치를 만난다. 과연 언제까지 최항우는 모가비에게 기만당할 것인가. 최항우와 차우희와의 관계도 흥미롭다. 이 순진하도록 서툴고 자격지심에 가득한 바퀴벌레들도 행복한 결말을 맞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 제자리가 바로 드라마가 가리키는 지점이다. 재미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