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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26 19:26

남자의 자격 "오랜만에 TV너머 옛친구의 기억을 떠올리다!"

가장 한심하고 모자르던 때의 기억에 저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짓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정작 TV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남자의 자격>을 보고 있지 않았다. 하기는 <남자의 자격>을 보다 보면 가끔씩, 아니 곧잘 그래왔었다. TV를 켜놓고 <남자의 자격>을 보고 있으면서도 필자의 눈은 저 멀리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필자가 <남자의 자격>을 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랜 친구들을 떠올렸다. 참 한심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저 부끄럽기만 할 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어째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린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그저 미숙하고 모자르기만 했다. 그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이었다. 친구가 아니라 원수다. 그리운 원수.

만일 그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해줄까? 내 주위에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차마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기가 무섭고 두렵다. 그러면서도 듣고 싶다. 나도 할 말이 있다. 껄껄 웃으리라. 민망해 얼굴을 붉히면서도 오랜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웃을 수 있으리라.

김국진의 입에 붙은 '찌질이'라는 별명이 그래서 그리 부럽다. 나이 먹어서는 욕이다. 나이 먹어서 사귄 친구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별명이다. 가장 한심하고 부끄럽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가장 유치할 수 있었던 시절을 함께 한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별명이다. 누가 나를 그렇게 불러줄까? 누구를 또한 내가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내게도 그런 별명이 있다. 내게도 불러줄 그런 별명들이 있다.

그렇게 대학동기 김귀화씨의 폭로를 두려워하면서도 어느새 이경규도 그것을 들으며 즐기고 있었다. 어른 아닌가. 다 자랐다. 이미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한심함이야 지나고 나면 추억거리일 뿐. 그래서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오랜만에 만나서도 바로 어제인 것처럼 타박하며 어울릴 수 있는 것은 그런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고단한 삶에 치이면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던 이경규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김태원이 한 말이 전부 거짓말은 아니었다. 싸움을 잘했다고 한다. 주먹이 셌다고 한다. 학창시절 사진을 보니 응암동 고릴라라는 별명이 지어낸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바다에 빠졌을 때 번갈아 살려달라 외쳐 살아났더라는 이야기의 당사자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학교 시절 썼다던 자작시 시집은 작사가 김태원의 뿌리를 보여주었다. 놀라웠다. 김태원이란 그 시절부터 이런 특별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구나. 한 번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재미있고 관심이 가는 것은 각자의 첫사랑 이야기였을 것이다. 눈이 가늘어지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저 곁눈질로 일부러 지나치며 훔쳐만 보다가 이사를 하고 마침내 편지를 적어 보냈을 때 거절하더라는 김태원의 이야기부터, 모두가 이경규의 사랑이라 여기고 있던 가장 친했던 대학시절 여자친구 봉구씨에 대해서도, 김국진은 아니나 다를까 고백도 해보지 못한 채 그저 수줍게 첫사랑을 마치고 있었다. 친구의 여자친구를 따라 좋아하던 이경규와 괜히 같은 반 여자아이를 괴롭히던 개구쟁이 전현무의 이야기도 정겨웠다. 더구나 그 당사자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어서 그 느낌이 더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여자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아니 내성적인 필자로서는 어울린다기보다 그저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 함께 앉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리도 한심해 보였는지 이것저것 필자를 많이 챙겨주었었다. 이내 이웃한 동네에 새로 초등학교가 지어지면서 전학가버린 탓에 그 이상의 기억은 없었지만. 무척 서운했었는데. 지금 보면 얼굴이나 기억할 수 있을까? 김국진에게 공감한다. 첫사랑이 아릿한 것은 아직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리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모르겠다. 많이들 조숙하다.

그저 예능프로그램만이 아니었다. 비단 <남자의 자격>만을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 무엇을 보았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시절 친구들. 그 시절의 기억들. 그리고 그 시절의 이야기들. <남자의 자격> 멤버들과 그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 필자와 필자의 오래도록 보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 <남자의 자격>이란 단순히 웃고 즐기자는 예능이 아니었다. 필자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필자 자신을 보려 한다.

많은 시청자들이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바일 것이다. 예능이지만 예능이 아니다. 아니 예능이라는 것이 그저 웃고 떠들고 해서만 예능이 아닐 것이다. 친구들과의 어울림도 재미있다. 가족과 갖는 시간도 즐겁다.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를 돌아본다. 문득 깨닫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느새 50대를 넘긴 이경규와 50대를 바라보는 김태원, 김국진, 40대를 넘어선 양준혁과 이윤석은 그것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가장 젊은 전현무와 윤현무에게서조차 그들의 삶이 보인다. 공감하게 된다. 단순한 TV프로그램을 넘어 TV화면 저 너머의 무엇을 보게 된다. <남자의 자격>이다.

물론 현실이란 그렇게 TV속 프로그램에서와 같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자식도 둘씩이나 두고 있었다. 김국진만이 혼자였다. 양준혁 역시 아직 결혼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한 소리 듣고 있었다. 모두가 예전만 같지는 않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고 있다. 옛친구가 갖는 한계다.

현실의 이야기다. 서로의 시간이 멈춰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시간이 서로에게 흘러가고 있다. 친동기간에도 그 시간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 서로 갈라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결국 그 시간의 거리를 채워주는 것이 서로가 두고 온 시간의 파편들 - 기억일 것이다. 현실이야 어쨌든 그런 그리움과 행복한 기억들이 살아갈 힘을 준다. 즐겁고 기쁘게 만든다. 추억의 힘일 것이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옛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연락은 닿을까? 연락을 한다면 과연 닿을 수는 있을까? 하지만 그것으로도 족하다. 나는 그들을 기억한다. 어제같이 생생하다. 언제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TV를 보지 않았다. 그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그들을 그 기억들을 보았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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